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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치(東一雉)
동1치는 동1포루舖樓와 동포루砲樓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치雉는 꿩을 말하는데, 꿩이 몸을 잘 숨기고 엿보기 잘하는 특성이 있어 이런 이름을 붙였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동1치는 평탄한 지형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을 조망하기 위해 규모를 크게 만들었다.
VIEW MORE동이치(東二雉)
동2치는 동포루砲樓와 봉돈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br /> 동2치는 1979년에 화성을 복원하면서 다시 쌓았다. 본래 성돌이 붉은 색을 띤 반면 새로 쌓은 곳은 가지런히 다듬은 흰색 돌로 만들어져 있다. 치성 좌우에 있는 옛 성돌에서 돌을 뜨기 위해 정을 박은 흔적을 볼 수 있다.
VIEW MORE동삼치(東三雉)
동3치는 동2포루舖樓와 동남각루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동3치는 치성 가운데 폭이 가장 넓고 길이가 짧다. 성 바깥이 급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어 치성 길이는 짧게 만들고, 주변을 멀리 살피기 위해 전면 폭을 넓게 확보한 것이다. 다른 치에는 현안을 한 줄만 내고 타구를 두지 않았지만, 동3치는 폭이 넓어서 현안을 두 줄 설치했다.
VIEW MORE용도(甬道)
용도는 좁고 긴 성벽으로 둘러싸인 통로를 가리킨다. 이곳은 좌우 지형이 급경사를 이루면서도 우뚝 솟아 있어 남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만약 적에게 빼앗기면 성안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서남암문 밖으로 좁고 긴 성벽인 용도를 만들었다. 용도 중간에는 좌우에 치성을 하나씩 만들어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했다. 용도 끝에는 서남각루가 자리잡고 있다.
VIEW MORE성신사(城神祠)
성신사는 화성을 지키는 성신城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정조는 축성이 완료될 무렵 성신사를 설치할 것을 명령하고 축문을 지어 내렸다. 1796년 9월에 건물을 완성하고 신주神主를 봉안한 후, 매년 봄가을로 제사를 올렸다.<br /> 성신사 정당은 정면 3칸인데 앞쪽이 개방되어 있어 제사를 지내기에 적절한 구조다. 정문 좌우에는 행랑을 두어 남쪽은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으로 쓰고, 북쪽은 제관이 머물며 준비하는 재실로 이용했다.<br /> 일제 강점기에 제사가 폐지되고 건물도 사라졌으나 2009년에 화성성역의궤와 발굴된 유구를 참고하여 복원했다. 성신사가 있던 옛 터는 지형이 높아져서 제 위치에 복원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남쪽으로 약간 자리를 옮겨 지었다. 발굴된 유구는 흙으로 덮어 보존했다.
VIEW MORE미복원 동쪽 성벽
수원 화성은 팔달문을 기준으로 좌우 성벽이 단절되어 있다. 이곳은 남수문에서 팔달문 동쪽으로 이어진 구간으로 184m의 성벽에 남동적대, 남암문, 남공심돈이 있었다.<br /> 팔달문에서 동쪽으로 약 49m 떨어진 곳에 있었던 남동적대는 남서적대와 함께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고, 남암문은 주 이동 통로로 사용했다. 보통 암문은 비상시 출입구로 쓰이지만 축성 당시부터 남암문 바깥쪽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주 출입구로 쓰였다.<br /> 남암문에서 약 36m 떨어진 곳에는 성밖을 살피는 망루인 남공심돈이 있었다. 이 구간은 1920년대에 도로를 넓히기 위해 철거된 이후 복원되지 못했지만 1907년에 촬영된 사진을 통해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VIEW MORE미복원 서쪽 성벽
수원 화성은 팔달문을 기준으로 좌우 성벽이 단절되어 있다. 이곳은 팔달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 성벽이 팔달문과 이어지는 구간으로 120m의 성벽에 남서적대, 남은구가 있었다. 남서적대는 팔달문에서 서쪽으로 약 49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남동적대와 함께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1920년대 도로를 넓히기 위해 팔달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면서 사라졌다. 남은구는 남서적대에서 서쪽으로 약 48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팔달산에서 시작된 물길이 성안의 남지 연못을 거쳐 성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든 수문이다. 성안에는 5곳의 연못과 2곳의 은구가 있었으나 모두 복원되지 않았다.
VIEW MORE북은구(北隱溝)
은구는 눈에 잘 띄지 않게 만든 도랑이나 수문을 말한다. 화성에서는 남북 두 곳에 은구가 있었다. 북은구는 북포루 동쪽 성벽 아래 설치했는데 성 밖의 작은 도랑물을 끌어들여 성안 북지에 물을 모아 두기 위해 만들었다. 1970년대 수원화성을 복원하면서 발굴조사를 통해 북은구의 위치와 구조를 확인했으나 북지 연못과 함께 정비하기 위해 복원대상에서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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