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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청(裨將廳)
비장청은 고을 수령을 보좌하는 비장들이 근무하는 건물이다. 화성 유수는 정2품 당상관이었기 때문에 여러 명의 비장을 두었다. 조선 정조 19년(1795)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를 때 비장은 음식을 차리는 일을 비롯해서 행사의 모든 절차를 담당했다. 비장청은 유수를 보좌하는 업무 성격에 맞게 고을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는 건물인 동헌(봉수당) 가까이에 두었다. 화성 축성이 마무리되던 1796년에 서리청의 건물을 수리해서 비장청으로 사용하였다.
VIEW MORE서리청(書吏廳)
서리청은 화성유수부 관청의 여러 사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들이 근무하는 건물이다. 조선 정조 13년(1789) 수원읍을 옮길 당시에는 장남헌 동쪽에 서리청을 지었다. 화성 축성이 마무리되면서 서리청의 건물을 비장청으로 사용하고, 그 동쪽에 있던 금도청을 고쳐서 서리청으로 사용했다. 행궁 안의 건물들이 보통 10칸 내외 규모인데 비해 서리청은 22칸에 달한다. 서리청 마당 건너 남쪽에는 문서창고가 있다.
VIEW MORE집사청(執事廳)
집사청은 관청에서 치르는 제사나 행사를 준비하는 집사들이 근무하는 건물로 조선 정조 14년(1790)에 건립되었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를 비롯해서 왕이 화성에 내려와 진행하는 모든 행사를 준비했다. 평소에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이 화성행궁의 객사인 우화관에서 올릴 의례를 준비하는 곳으로 쓰였다. 집사청은 우화관 가까이에 있어 효율성을 고려하여 배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VIEW MORE북군영(北軍營)
조선 정조 18년(1794) 화성행궁을 증축하며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군영을 지었는데 남쪽은 남군영, 북쪽은 북군영이라고 부른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두 군영의 건물이 동일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행궁전도」 그림을 보면 남군영은 일자형이고, 북군영은 ㄷ 자형이다. 반면 <정리의궤>의 「행궁전도」에는 북군영이 ㄱ 자형으로 그려져 있다. 이에 2002년 복원 시의 발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군영을 ㄱ 자형으로 복원했다.
VIEW MORE남군영(南軍營)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남군영과 북군영 건물을 짓고 약 100명의 군사가 교대로 행궁을 지켰다. 남군영은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주둔하는 건물이다. 장용영 군사는 왕이 화성에 내려올 때는 물론 평소에도 화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봄, 가을로 두 번 시험을 치러서 수석을 차지한 군사에게는 곧바로 관직을 높여 주는 등 특별한 혜택을 주었다.
VIEW MORE내포사(內鋪舍)
내포사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행궁에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던 군사 시설이다. 화성행궁 후원에서 높고 탁 트인 곳에 있어서 사방을 관찰하기에 적절하다. 평상시에는 장교 1인과 군졸 3인이 근무하였지만 왕이 행궁에 머물면 장교 2인과 군졸 4인을 배치해 경비를 강화했다. 전면 반 칸은 개방하고 좌우에 낮은 벽을 쳐서 비바람을 막았으며, 군사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후면 1칸에는 온돌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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